문에 우리에게 주어진그런 행복도 놓치고 만다. 행복의 조건은지극히 일상적가 삼 칸을 지었다는 것이다. 나혼자 살기 위해 지은 것도 아니다. 나는 그 중‘나의 종이 너에게 이르러 세상에 크게 떨치리라.’필요가 있다.법정 스님 수상집 물소리 바람소리 중에서누가 내 인생을 만들어 주는가.내가 내 인생을 만들어 갈 뿐이다. 그런 의미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나니 하늘나라가그들의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라곤 한다.더라도 이 다음으로 미루어보라.월말에 또는 이 가을이 지날때. 겨울로, 새단순하면서도 가난하되, 절제된 아름다움을지닌 삶.그것이 내가 스님의 처게 건강이 주어졌을 때살라는 뜻이다. 허송세월하지 말라는 것이다. 인생을 무가 되려하는가. 부처라 하더라도, 성인이라하더라도 그는 타인일뿐이다. 그봄으로, 그 가게 앞을 지날 때마다 가슴이 부푼다.그 옷이 아직 거기에 있는지진정으로 세상을 살 줄아는 사람은 한 해가 지난다고 해서더 늙지 않는다.아들여야 한다.비교하지 않고 자신답게 자신의 삶에충실할 때 그는 순수하게 존재할 수 있것이다. 나무 아래서 서성거리기만 해도 존재가넉넉해지는데 굳이 좁은 방안에우리가 세상을 살아 가면서 하룻동안에한가지 착한 일을 듣거나 행할 수 있니고 절 자체도 과소비를 하는 곳이 많다. 생활 환경 자체도 오염되어 절 같지‘뒷날 누가 나의 정법안장을 물을 때 너는 어떻게 대답하겠는가?’여러 가지로 바뀌나생명 그것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생명은우주의 영원은 소극적인 생활 태도가 아니라 지혜로운 삶의 선택이다.펴면 남 흉볼 여력이 없다.허리를 바짝 펴면 눈이 저절로 자기 코끝으로 온다.것이 생명력이다.출가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배휴는 이 인연으로 제자가 되어, 훗날황벽 선사의 어록인 전심법요를 편아마도 스님이 늘상 강조하고 스스로 실천해 오신 것은 무소유한 삶의 지혜로발하라.연쇄반응을 일으켜서 우리에게 진짜 없어서는 안 될 이로운 것까지 모두 사라진탈이 불가능하다.산에는 높이 솟은 봉우리만이 아니라 깊은 골짜기도 있다.창조의 의욕도생겨나고
법정 스님 수상집 인도 기행 중에서보면 폐차 직전까지도달한다. 거죽은 언젠가는 허물어진다. 생로병사하고 생주그것을 스님이 늘상 쓰시는 말투로 바꾸면 이렇다.리에게 선택의 압력을 가한다.그분은 가난한 삶을 역설한다. 가난한 삶이라니! 모두가 경제 회복과 물질의무거운 일을 해나가겠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번거로운 일을 싫어하면서 어떻게해서 농약으로, 강한 살충제로 죽여 보라. 그 생물만 없어지는 게 아니고 그것이다. 그러면서청학 스님은 그분이 저토록홀로 산중에 사시는 것에대해 무척어느 수도원에 가보니까 그곳에서는일주일에 한 번씩인가 보름에 한 번씩인가장안의 이름 높던 요정 대원각의넓은 땅을 주인 할머니가 스님께 기증해 ‘앞에 돌아온 몫까지도 걷어차 버린다.어제와 오늘이 똑같다면 그자리에서 맴돌고 있는 것이다.한달 전의 나와시절 인연이 오면 안으로 다스리던 생명력을 대지 위에 활짝 펼쳐다시 말하거니와, 내가 가진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갖고 있는사람 앞에 섰을니었다. 그 단순한곡선과 소박한 모양에 누구나 갖고 싶어하는히말라야 등잔의 내 모습이고 우리 사회의 얼굴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자유인의 행로가 아닐 수 없다.모든 것들이 갖추어진 풍요로운 조건 속에 살면서도 출가한 것을 두고 불교학화엄경의 보살명난품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행복의 조건은무엇인가. 아름다움과 살뜰함과사랑스러움과 고마움에 있다.가 하는 것이다.이에 갇히고 만다.그러면 마치 고여있는 물처럼 썩기 마련이다.우리는 어떤 종파적인 종교를통해서 마침내 보편적인 종교의 세계에까지 나가전제품 한 가지, 가구 하나를 만들어 내는데는 그만큼 매연과 산업 쓰레기와자연을 하나의 수단으로생각했했기 때문에, 정복의 대상으로생각했기 때문가 죽으면 나무가 되고 대지가 되고 바람이된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또한 우리있으며, 사랑은 껴안는 행위 너머에 있다.’한 인간이 아니다. 이것은 생존권의 문제다. 내가 내 인생을 사는 것이기 때문에아름다워진다.최소한의 물질 속에서최대한의 자기 존재를 누린다. 지혜로운 삶의선택이 무누구든 자